장래희망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람됨'에서 시작됩니다. 손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을 통해, 자기이해와 정체성 확립의 진정한 의미를 함께 살펴봅니다.
“장래희망이 뭐야?”
어릴 적부터 들어온 익숙한 질문입니다. 많은 이들은 그 질문에 의사, 변호사, 선생님 등 특정 직업으로 대답해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거의 받아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직업’이라는 틀을 넘어, ‘사람됨’이라는 본질적인 물음에 눈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청소년에게는 올바른 정체성 형성의 시작이 되고, 중장년층에게는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업은 사라지고 변한다, 하지만 사람됨은 남는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전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단단히 자리잡았던 전통적인 직업 구조는 4차 산업혁명, 디지털 기술,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빠르게 해체되고 있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안정적인 미래 직업으로 여겨졌던 은행원, 회계사, 번역가, 심지어 기자까지도 AI와 자동화 기술로 대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편, 유튜버, 데이터 분석가, UX 디자이너, 메타버스 건축가 등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직업군으로 부상했습니다.
이처럼 직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고, 또 생겨납니다.
즉, 특정 직업을 장래희망으로 설정하는 것은 미래 예측이 어려운 이 시대에 오히려 불안정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꿈꾸는 직업이 10년 뒤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교육자와 부모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결코 낡지 않습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인간 사회는 항상 정직함, 책임감, 배려, 창의성, 공감, 성실함 같은 본질적인 덕목을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의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환자를 대하는 진정성과 공감력은 의사의 가장 큰 자산이며, 기술을 설계하는 엔지니어에게도 윤리적 기준과 사회적 책임의식은 반드시 요구됩니다.
‘사람됨’은 단지 인격적인 측면을 넘어,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태도로 세상과 관계 맺을지를 결정짓는 핵심입니다.
그것은 직업을 초월하는 정체성이자, 평생을 이끌어줄 삶의 나침반입니다.
청소년 시기부터 이러한 기준을 세우는 것은, 직업이라는 외적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삶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주는 일입니다.
결국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묻는 사회적 문화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 질문이야말로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 방향성을 심어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정의한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 앞에 서게 됩니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 습관처럼 반복하는 행동 하나, 위기 앞에서의 태도…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순간의 결과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재료가 됩니다.
말과 행동은 단지 외적 표현이 아니라, 나의 내면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거울이며, 타인에게 나를 알리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입니다.
이러한 말과 행동은 누적되어 결국 한 사람의 인격과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누군가는 신뢰받는 사람으로, 누군가는 감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평판과 자아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일상의 선택과 실천을 통해 조금씩 쌓여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먼저 세워야 합니다.
이 기준은 일종의 나침반이 되어,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단기적인 목표나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일관된 삶의 태도를 유지하게 만드는 내적 원칙인 셈입니다.
청소년기에는 이러한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정체성 형성의 핵심입니다.
이 시기에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사람으로 이어질지를 고민해보는 습관은 장기적으로 매우 큰 자산이 됩니다.
반면, 중장년층에게는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고, 내가 살아온 방식이 내가 바라는 모습과 일치했는지를 점검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혹시 그동안 외부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다면, 지금부터라도 ‘내가 진심으로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워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중심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선택, 말,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갑니다. 그 출발점이 되는 질문은 늘 같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손자의 지피지기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손자병법의 이 유명한 구절은 오늘날에도 전략과 자기이해의 핵심 원칙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겉보기엔 단순한 전술 원칙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핵심은 ‘자신을 아는 것’이 ‘상대방을 아는 것’보다도 먼저라는 점에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 약점, 한계, 감정의 패턴까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자기소개 수준의 인식을 넘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성찰하라는 철학적 명령입니다.
놀라운 점은 이 두 사상이 서로 전혀 다른 문화권, 전혀 다른 시대에서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같은 핵심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이해 없이는 올바른 삶을 설계할 수 없다’는 것.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이 바뀌고, 사람들의 기대가 달라지고,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이 변화할 때마다 자신의 기준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반면,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어떤 선택 앞에서도 ‘나의 기준’에 따라 결정할 수 있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동양의 병법과 서양의 철학 모두가 자기이해를 삶의 시작점이자 핵심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간의 삶은 수많은 외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결국 ‘나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모른 채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삶이 흔들리고 있다면,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할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어렵다면?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자기이해’를 강조해왔지만, 막상 그 과정을 실천하려 들면 누구나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나를 안다는 건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기대, 사회적 기준, 소셜미디어가 보여주는 타인의 삶은 우리의 시선을 바깥으로 향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지조차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가지 현실적인 접근법을 제안드립니다.
‘완벽하게 나를 아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먼저 그려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타인의 아픔에 따뜻하게 반응하는 사람인가요?
실패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사람, 혹은 고정관념을 깨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이상적인 사람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일은, 곧 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모습은 처음부터 완성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완벽한 이해보다 방향성을 갖고 꾸준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기준을 세우고, 매일의 말과 행동 속에서 조금씩 그 모습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결국 진짜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 됩니다.
이 여정은 청소년에게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고, 성인에게는 자기중심을 되찾고 삶을 다시 설계하는 중요한 기회가 됩니다.
‘나를 아는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질 때, 오히려 ‘이상적인 나’를 먼저 그려보는 것이 더 실질적인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될지 고민할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이 올바른지도 살아가며 계속 고민해야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청소년에게는 정체성, 중장년층에게는 재정립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특정 시기에만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삶의 모든 시기에서 유효하며,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청소년에게는 이 질문이 곧 정체성 형성의 시작점이 됩니다.
인지와 감정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이 시기에는 외부의 평가와 기대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며,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는 경향이 강해지기도 합니다.
이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내면의 질문을 던져보는 경험은,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와 신념에 기반한 정체성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반면, 중장년층에게 이 질문은 삶을 다시 돌아보고 중심을 재정립하는 기회가 됩니다.
가족, 직장, 사회적 역할 속에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하다 보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종종 뒤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삶의 한 고비를 지나며 마주하게 되는 공허함, 방향 상실감은 결국 그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듭니다.
“내가 진짜 원한 삶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내가 바라던 모습에 가까운가?”
이 시점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자기반성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짓는 핵심 키워드가 됩니다.
외적 성공이나 직업적 지위가 아닌, 진정한 삶의 방향성과 의미를 다시 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진짜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를 명확히 아는 일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고민과 실천은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이며, 인간다운 삶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기준이 됩니다.
결론
장래희망은 단순히 직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깊은 질문입니다.
직업은 바뀌고 사라질 수 있지만, 사람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나는 가치를 가집니다.
오늘부터라도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 질문 하나가 인생을 바꾸는 방향키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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